양희은의 <한계령>
한계령
하덕규 작사․곡 양희은 노래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며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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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매몰찬 손사래질
그 속에 담긴 위안의 말들
산은 왜 오지 마라, 오지 말라고 할까? 이 노래를 듣다보면 여기서 막히곤 합니다. 왜 산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것을 막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든 현 위치(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견디고 버티며 제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겠죠. 누군가의 말처럼 거기 산이 있으니까 오르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체로 산을 찾는 이유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즐기기 위해서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너진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거나, 과거의 아름다움 한 자락을 찾고 싶어서거나, 마음껏 소리치고 싶어서거나, 아무도 몰래 혼자 실컷 울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고 싶어서입니다.
여자라면 남편과의 불화, 자식과의 갈등, 갑작스럽게 찾아온 삶의 회의감,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허탈감…….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산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아무도 몰래, 낯선 길을 찾아 나선 산행을 나섭니다. 산을 찾아가 산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다, 마치 친정어머니 품에 파고들어 눈물을 쏟는 결혼한 딸처럼.
남자라고 다를까요? 퇴출 위기까지는 아닐지라도 매일 사표를 생각게 하는 분위기,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능력이나 성과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우대와 차별에 대한 부당성, 그에 따른 직장 상사 및 동료와의 갈등, 직장에 매달리다보니 소홀해지는 가정사로 말미암은 아내와의 불화, 자녀들에게 돈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위상 파악, 열심히 사느라고 신발 밑창에 고무 타는 냄새가 나도록 뛰어다녔는데 남은 것이라곤 반쯤 벗겨진 대머리뿐일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안 받고 싶어집니다. 친구에게 얘기해봤자 그라고 다를 바 없고, 잘 나가는 친구에게 얘기한다해도 낙오자의 푸념 정도로나 들을 게 뻔하고, 아내나 형제에게 얘기하자니 걱정만 끼칠 것 같고, 혼자 삭이자니 미칠 것 같고, 더 참았다간 우울증에 걸리거나 뛰쳐나갈 것만 같을 떄, 남자도 술이나 한 잔 기울이거나, 고향동네나 산이나 바다를 향합니다. 답답함을 풀어놓는다고 풀릴 리야 없지만, 그 마음을 열어만 놓아도 조금 나을 성싶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처럼 자신 편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친정어머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남자에게는 그런 곳도 없습니다. 제가 그날, 한계령을 찾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가 아름답고 들을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을 짧게,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노래를 이야기로 풀어가며 그 의미를 살펴볼까요.
어느 날 친정어머니에게 시집간 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그것도 전에 없이 이른 시각이거나 밤늦은 시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일이다, 명절이다, 결혼기념일이다 해서 전화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시간인 만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고 모른 체합니다. 아니, 너무나 뻔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매몰차게 쏘아붙입니다. 가슴은 벌써 찢어져서 너덜거리면서도.
“야, 오지 마라. 안 그래도 요즘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왜? 집에 무슨 일 있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있니? 모두가 바람을 일으키니 정신이 없다. 안 그래도 오늘쯤은 병원엘 가보던지 찜질방에라도 가려고 하니까, 괜히 헛걸음 마라.”
“엄마……, 사실 나 좀 힘들어.”
“그럼 힘들지 힘 안 든 삶이 어딨겠니? 그래도 너는 낫다. 가정적인 남편 있겠다, 아이들 착하고 공부 잘하겠다…… 호강에 겨운 소리 그만 하고 끊자. 누가 왔나 보다.”
이것이 바로 첫 소절 오지 말라고 막으며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을 펼쳐놓는 산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산은 정말로 오지 말라고 막지는 않습니다. 마치 친정어머니가 바쁘다며 전화를 끊고는 혼자 한숨 쉬며 무슨 일일까를 곱씹듯, 산도 결국 그런 우리를 받아들이고야 맙니다. 노심초사 무슨 일인가를 생각하며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송수화기를 몇 번 들었다놓았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소절일 것입니다.
결국, 딸은 친정집을 찾아옵니다. 와서는 어머니 앞이라 눈물은 보이지 못하고 혼자, 가슴으로 웁니다. 그걸 뻔히 아는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먼저 말을 걸고야 말겠죠?
“무슨 일 있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딸은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딸을 보며 위로하고 어루고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이 셋째 소절과 넷째 소절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어머니의 위로에 딸은 결국 지금껏 가슴에 쌓았던 사연들을 풀어놓았을 것입니다. 남편 이야기뿐이겠습니까? 시집 이야기, 자식 이야기…… 시집 간 후의 삶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것입니다. 가끔은 남편의 바람기와 시집의 두둔을 성토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등을 쓸어내리며, 다 자신이 죄라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딸을 위로하겠죠.. 가끔은 딸의 이야기에 동조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딸 편을 들어 사위와 사돈댁을 욕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딸을 위무하기 위한 행동일 뿐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죠. 어떻게든 달래서 딸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것을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네.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라고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딸은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어머니에게 말하겠죠.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남편도, 자식들도, 가정도 모두 버려두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싶다고. 한 평생을 무엇에 묶임없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 평생을 이처럼 얽매인 채 산다면 백 년을 살아도 후회스러울 것만 같다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 바람처럼 정처없이 어디로든지 떠도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영원히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그러나 딸의 그런 속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말리겠죠.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런 삶 자체도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하면서. 살면서 경험했던 일들이며 여기저기서 들었던 갖은 일화를 예로 들면서 딸을 단념시키려 할 것입니다. 바람이 그물에는 안 걸릴지 몰라도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인간에게 진정한 만행(漫行)이란 없는 것이고, 인생이란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수께끼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겠죠.
그렇게 딸의 마음이 얼마간 누그러지는가 싶자, 어머니는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딸이 궁금해서 묻자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니 온 김에 집안 청소나 좀 하려고……, 여기저기 쑤셔 넣었더니 어딨는지 생각조차 안 나네…….”
“뭘 찾는데?”
“찾긴 뭘 찾아! 버릴 것들은 버리고, 쓸 만한 것들은 새로 정리해 두려고 그러지.”
오후 내내 안방이며, 부엌이며, 찬장이며, 장식장이며, 옷장까지 뒤지더니 어머니는 커다란 보따리 서너 개를 딸 앞에 내놓습니다.
“저녁 때 전에 빨리 돌아가!”
“난 안 간다니깐!”
“애들 돌아올 시간이 됐어. 얼른 가서 저녁도 해줘야 하고…….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애미를 불렀는데 안에서 아무 대답 없는 것처럼 허전한 게 없는 게야. 그리고, 그걸 평생 가슴에 안고 사는 거고, 그러니 딴 소리 말고 어서 나서…….”
“난 다시 그 집에 안 들어간다니깐!”
“또 그 소리다. 누군 좋아서 참고 사는 줄 알아? 참다보면 다 웃으며 돌아볼 날이 있어. 니 애빈 내 속 좀 썩인 줄 아니? 니가 몰라서 그렇지, 이만한 일로 집 나갔으면 난 백 번도 더 나갔을 거다. 그러나 이제 그런 티나 나?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고 늘그막의 얘깃거리야. 그러니 정신 차려, 이것아!”
너그러움은 전파력을 갖는 것일까? 딸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걸 눈치 챈 어머니가 보자기들을 들려주며 재촉합니다.
“이건 김서방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다. 안 그래도 담가두고 갖다준다 갖다준다하다가 못 갔다준 거고, 그 옆엣 건 인삼 꿀에 절인 거다. 남편이 미워도 뭘 멕이면서 미워해. 멕이지도 않으면서 미워하면 정말 미워하는 줄 알아. 철딱서니 없이 지 맘에 안 든다고 휭하니 친정집 찾지 말고…… 다음부턴 시집으로 가. 그래야 사랑받고 사는 게야.”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먼저 집을 나섭니다. 마지못해 스적스적 따라나서는 딸.
대문 밖에서 딸에게 보따리를 넘기고는 어서 가라고 손사래질을 해댑니다. 어여 가, 가선 다시 오지 마, 힘들수록 더 힘차게 살고………. 그게 다 삶이야.
어머니는 속울음을 울며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소리 없이.
제가 그날 한계령을 내려오면서 받은 위로는 이런 것입니다. 그런 위로를 정말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 이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제게 산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앞에 상상했던 딸과 친정어머니가 나눈 대화나 과정이 묵언으로 감추어졌을 뿐, 아버지는 어서 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눈빛으로, 헛기침으로.
언젠가 제가 써놓은 <산>이라는 시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山은
높건 낮건
山으로 살아간다
없는 듯
제 자리에서
풀과 나무를 키우고
새와 짐승을 품어 기르며
구름
몰래 덮어
가리고 지켜준다
가슴
드러내지 않고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마른 헛기침이나 하면서
돌아앉아 혼자 눈물 훔치면서
흐음,
무뚝뚝함
표현하지 않는
가슴앓이로 조용히 늙어간다
아차, 그러지 말고, 우리, 오늘, 부모님께 전화나 한 통씩 할까요? 그렇다고 울먹이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