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신유의 <잠자는 공주>

장경수 작사, 신웅 작곡, 신유 노래

 

세상이 미워졌나요 누군가 잊어야만 하나

날마다 쓰러지고 또 다시 일어서지만

달라진 건 없는 가요.

인생길 살다가보면 뺑 돌아가는 길도 있어

하루를 울었으면 하루는 웃어야 해요

그래야만 견딜 수 있어

앵두빛 그 고운 두 볼에 살며시 키스를 해주면

그대는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하얀 미소 지을까

그대여 어서 일어나 차가운 가슴을 녹여요

또 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걸어봐요

그대 곁에 나 있을게

 

앵두빛 그 고운 두 볼에 살며시 키스를 해주면

그대는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하얀 미소 지을까

그대여 어서 일어나 차가운 가슴을 녹여요

또 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걸어봐요

그대 곁에 나 있을게

그대 곁에 나 있을게

 

 

 

 

https://youtu.be/HLEgtBixuy0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위안에서부터 오는 평안함과 삶의 활력

 

 

  평상시엔 안 그러다가도 삶이 힘들어질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자 합니다. 신이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그런데 그들에게 의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안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런지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까이 있음으로 하여 너무나 먼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낯선, 우리와는 멀리 있는 존재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집니다. 첫머리에서도 밝혔듯이, 바로 그런 시간에 저는 이 노래를 만났고, 뜻하지 않게 위안을 받았고 힘을 얻었습니다.

  노래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죠.

  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노래를 두 번째 듣고는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판대로 다가갔습니다. 트롯에 대해선 별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곡조나 가사가 특이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간주 중에 가판대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의 노래냐고. 그랬더니 “길보드 차트 1위 곡도 모르냐?”고 핀잔조로 되묻는 가판대 아저씨가 알려준 제목은 <잠자는 공주>였습니다. <잠자는 공주>라니? 트롯치고는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판대 아저씨한테 처음부터 들려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음반을 살 줄 알았는지 아저씨는 음악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틀어주더군요. 전주(前奏)부터 예사롭지가 않더군요. 다른 트롯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주 후 이어진 네 소절을 듣고부터 저는 이 노래에 빠져버렸습니다. 음은 다른 트롯이나 마찬가지로 특이할 게 없었지만 가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가판대 옆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저를 위한 노래였습니다. 아니, 삶의 비애로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였습니다.

  노래에서 나(이 노래를 듣는 우리 모두)는 공주가 됩니다. 가슴 뛰는 일이죠. 그런데 나는 백설공주이기는 한데 자폐증이 있는 공주입니다. 세상이 미워졌거나, 누군가를 잊어야만 하는, 변화 없는 세상사에 이골이 나서 잠속에 빠져버린 공주니까요. 바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바로 ‘나’였습니다. 백설공주가 잠 속에 빠진 이유는 독이 든 사과 때문이 아니라, 힘든 세상사를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잠 속에 빠져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해석부터가 마음을 울리더군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자 그 마음이 짚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란 아무것도 모르게 잠들고 싶은 날이 태반이 아닐까요? 그러나 깊은 잠속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오히려 행복이란 걸, 잠도 못 이루고 뒤척일 때가 정말 괴롭다는 걸 잘 알고 계시겠죠? 이 노래를 듣던 바로 그 때가 그런 상태였습니다. 제 주위에 우호적인 것이 하나도 없던, 잠마저도 도망쳐버린 바로 그런 때였으니까요. 그러니 잠자는 공주와 저를 동화시키기엔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의 화자죠. 화자는 깊은 잠속에 빠져있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위안의 말을 건넵니다. 어쩌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나’를 곁에서 지켜주며 빨리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가진 ‘나’는 공주일 수 있는 것이겠고요.. 그런 나를 측은하고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화자는 말을 걸더니 위로를 건네기 시작입니다.

  “세상길 걷다가보면 삥 돌아가는 길도 있어 하루를 울었으면 하루는 웃어야 해요 그래야만 견딜 수 있어.”

  어찌 생각하면 시건방진 소리 아닙니까? 아니, 자기가 뭔데 인생의 비애 때문에 잠 속에 빠져있는 ‘나’에게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해댄단 말입니까? 자기가 ‘나’의 입장의 돼봐, 그런 말이 나오나. 개뿔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함부로 지껄이고 있다고 화가 날만도 합니다. 그러나 화자의 이런 말들은 시건방진 말이라기보다 잠에 빠진 ‘나’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인 것 같습니다. ‘나’보다 조금은 더 산, 또는 ‘나’보다 인생의 쓴맛을 좀 더 본 사람이 ‘나’에게 힘내라고 위로를 건네고 있는 듯합니다.

  “하루를 울었으면 하루는 웃어야 해요. 그래야만 견딜 수 있어.” 바로 뒤에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웃게 해줄게”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죠. 바꾸어 말한다면 그 동안 울었으니 이제 웃게 해 주겠다는 말이겠죠. 그것은 화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앵두빛 그 고운 두 볼에 살며시 키스”―을 바로 이어서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고 잠들어버린 ‘나’를 키스로 깨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내? 남편? 부모? 자식? 글쎄요. 분명한 것은 잠자는 ‘나’를 애달프게 생각하고 어떻게든 깨워서 새 삶을 살게 하고픈 존재겠지요. 그래서 노래에서는 잠자는 공주를 깨우는 왕자로 설정한 것이겠고요.

  사실, 사랑에 대한 여러 동화 중에서 백설공주 이야기처럼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버림받은 존재, 버려진 존재, 잠에 취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를 키스로 깨우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사가는 백설공주 모티프를 활용하고, 제목도 <잠자는 공주>라 지었겠죠? 아무튼 키스를 통해 다시 깨어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화자도 그 점을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하얀 미소 지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으니까요. 왕자인 화자는 이미 키스로 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공주가 깨어나 고맙다고, 당신 때문에 다시 깨어났으니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다행인데, 깨운 걸 원망하며 강짜라도 부리면 어쩌지 하고 망설이는 부분이 바로 “나에게 하얀 미소 지을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화자는 용감할 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투철한 영웅인가 봅니다. “또 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나와 함께) 걸어봐요. 그대 곁에 나 있을게”라고 분명히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잠에서 깨움은 물론 이 세상 끝까지 동행하겠으니 어서 가슴을 녹이라고 권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두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또 다시 시작되는 아침”일 수밖에 없겠죠. 공주가 깨어나는 시간이 저물녘이든, 한밤중이든 간에 두 사람에게 그 시간은 아침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금상첨화로 진짜 아침에 공주가 깨어나 안개 낀 아침 길을 함께 걸어간다면 더욱 좋은 일이구요.

  이렇듯 노래는 시종일관 잠자는 ‘나’를 깨우고 함께 하고파 못 견뎌 하는 왕자를 등장시켜 ‘나’를 깨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자고, 늘 곁에서 지켜주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어서 일어날 수밖에요. 그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자는 공주>는 이런 말들로 무너지는, 도망치는 저를 일깨웠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통해 저는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내 곁에도 이런 사람이 있겠지. 내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비록 보이지는 않았고, 보이지도 않고, 보이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