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자 작사, 김국환 작곡, 김국환 노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으음음 어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으음음 어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맨 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아 하하하하 아 하하하하하하하
어차피 우리 삶은 공짜가 아니던가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거부감일 일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뻔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노래나 시란 모름지기 뭔가 감추는 맛이 있어야 하고, 감춰진 그 무엇을 찾아내고, 음미하고, 되새기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는 영 아니었거든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시쳇말로 이루어진 노래에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김국환 씨에게마저 거부반응이 일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옷 광고의 카피처럼 ‘이 노래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싶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유행가가 제맛이야. 젊었을 때는 팝송이 좋던데 나이가 들수록 유행가가 좋아져. 그 의미와 맛을 알겠거든. 나이가 들수록 우리 음식이 좋아지듯, 유행가도 그런 것 같애.”
언젠가 한 선배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빙그레 웃고 말았지요. 나이는 나보다 많은데 깨달음은 나보다 늦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배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저는 팝보다 가요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연주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가 좋아졌었거든요. 그러니 그 선배의 말에 웃을 수밖에요. 그러나 선배와 내가 같은 세대구나 싶어 웃기도 했을 겁니다. 아무튼, 노래 취향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달라지듯.
이 노래도 그런 축에 속합니다. 맛과 멋이 없는 그냥 뱉어낸 말을 주워섬긴 듯한 가사가 가슴에 꽂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왜 이런, 어쩌면 상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말로 시작을 했을까요? 생각해봐도 답은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노래를 다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제 생각으론 노래의 화자에게 한 사람이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많은 고민과 아픔을 토로한 끝에 조심히 물어본 것 같습니다. 그러자 화자가 선문답을 하듯이 던진 한 마디가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야, 너는 나하고 가까우니깐 나를 알겠어? 모르겠지? 나도 너를 몰라 임마. 자기 자신도 모르는데 남인 내가 너를 어찌 알겠어. 인생도 마찬가지야 임마. 괜히 헛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우리 인생은 공짜 아니야? 너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뭔 값을 치뤘어? 아니지.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 인생은 공짜니까 공짜 인생 열심히 살면 그만이야.”
뭐 이런 말이 이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요? 그건 뒤에 이어지는 화자의 말을 통해서도 추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 임마. 우리네 인생은 그 누구도 한 치 앞도 모르는 거야. 그러니 살만한 거 아니겠어? 만약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안다고 생각해봐. 그것처럼 스릴 없고 따분하고 재미없는 게 어딨겠어?”
이 정도쯤 화자가 이야기하자 상대는 화자의 의도를 알기 시작했겠죠. 그런 낌새를 보이자 화자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굴원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입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창랑지수청혜면 가이탁아영이요)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창랑지수탁혜면 가이탁아족이다)
창랑이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그만 아닌가.
창랑의 물이 맑든 흐리든 내가 그에 맞춰 살면 그만이지, 물이 흐린 것만 탓해서 무엇하겠냐고 어부가 굴원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 말을 <타타타>에서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왜 환경과 상황을 탓하냐고 말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 가슴이 젖기 시작하겠죠? 비 오면 비에 젖는 게 옷이나 몸이 아니라 가슴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라 할 것입니다. 아무튼 김국환 씨의 쉰 듯한, 마치 우리에게 타이르는 듯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한 목소리는 계속됩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이건 마치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른 듯한 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란 말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해도 “수지맞는 장사”라니? 사는 게 수지맞는 장사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말에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건방진 말이지만, 정말 죄송하지만,
이 말도 맞는 것 같습디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삶을 끝장낼 생각으로 모든 걸 정리하다보니 이 말도 일리가 있습디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가 그 답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는 알몸으로 태어났는데, 갈 때는 수의(壽衣) 한 벌은 입고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건 결국 수지맞는 장사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죽을 생각으로 내 삶의 자국들을 지우다 보니 결국 못 지울 게 하나 있더군요. 다른 건 다 처리하고 없애고 태운다하지만 옷 한 벌은 입고 가야 하겠더라구요. 아무리 자살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옷 한 벌은 입고 가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러니 옷 한 벌은 얻은 셈 아닌가요? 어떻게 죽든 옷 한 벌은 입고 가는 게 인생이더라고요. 다른 존재들은 태어날 때 그 몸을 가지고 가지만 인간이란 존재만큼은 옷 한 벌을 입고 가더라고요. 그러니 이 노래 가사에 혀를 내두를 밖에요.
제 말에 동감하신다면 다음 구절은 당연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걱정이 많아 걱정인 게 우리네 인생인데, 걱정을 ‘인생을 사는 재미’로 표현하고 있고, 그걸 뛰어넘어 조물주가 우리네의 인생이 심심할까봐 우리에게 ‘덤’으로 준 장난감이란 것입니다.
정말, 으 하하하하하 아닙니까?
양인자란 작사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까지 했고, 어쩜 인생을 이렇게까지 낙천적으로 봤을까요? 그 분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분이 그 만큼 고통을 겪어봤다는 점이겠지요. 고통 속에서 작은 것에 대한 감사심이 생겨나는 거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웃음 부분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 하하하하 아 하하하하하하하……
아이고, 나 죽네.
‘타타타’는 ‘타타가타(tathagata)’를 말하는데, 산크리스트어로 ‘여여(如如)’ 즉, ‘있는 그대로’, ‘사물의 참된 현존상태’란 뜻이랍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자 합니다.